review 0911
박병래展_째보리스키 포인트 보안여관 8.3-21
고원석 (공간화랑 큐레이터)
우주복에 헬멧을 착용하고 알 수 없는 장비를 운용하는 주인공 '째보(Zebo)'는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고 폐허와 같이 방치된 장소들을 탐사한다. 조악한 장비와 복장에 척박하고 황량한 배경, 전체적인 회색조의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영상은 오래된 B급 SF영화의 거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을 조사하는지 알 수 없는 째보의 행위는 종종 말뚝박기나 자치기와 같이 생뚱맞은 놀이로 이어지며 호기심과 유머의 감정선을 오간다.
이번 전시의 작품은 작가가 전북 군산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째보 선창' 이라는 지명에서 시작되었다. 언청이를 비하해서 부르는 말인 '째보'가 어울리지 않게 지명으로 사용되는 것에 흥미를 느낀 작가는 그 지역을 조사하게 되었다. 작가의 미시적 접근은 결국 군산이라는 도시의 중첩된 역사성으로 연결되었다. 물론 군산과 같이 특별한 역사와, 그에 대한 부조화스러운 현재의 모습들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역사적 접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병래의 접근은 사전에 구축되고 의도된 개념적 프레임을 현장에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현실적 상황에서 기인한 공감각적이고 실존적인 것이라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동기는 박병래의 영상을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시를 이루는 물리적인 요소들의 이면에는 현재의 욕망들이 충돌과 타협을 거듭하여 구축된 긴장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결국 그 실체라는 것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도시가 제공하는 특정한 접근의 단서들은 과거에 형성된 학술적, 역사적 기반의 관계망 속에 인위적으로 편입되고 재조합되어 이미 의도된 결과의 프레임 속으로 용해되어버리는 것이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다. 그러나 예술은 기존의 규정과 질서에 대한 대안적 소통이라는 본원적 명제를 고려해본다면, 모호한 실체에 대한 작가의 미시사적 접근과, 창작의 과정에서 창출되는 미학적 타당성은 예술이 여타의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분명한 정체성의 일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째보 선창'에 대한 관심은 결국 군산에 산재하는 방치된 역사적 단서들로 연결된다. '째보'의 탐사는 구 동양척식주식회사나 조선은행이 있던 건물에서 시작해 과거 미군기지가 존재하던 시절의 기지촌이나 1980년대 있었다는 나이트클럽의 흔적들로 이어졌다가 다시 인근에 건설 중인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사막화되는 해안선이나 군사기지의 부속물인 냉각탑 등 동시대적 요소들에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비선형적 시간으로의 유영이 전시가 이뤄지고 있는 보안여관이라는 장소의 특수한 분위기와 맞물리며 또 한번의 중층적 시간의 층위를 획득하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째보리스키 포인트(Zeboriskie Point)>는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1970년작 영화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를 작가가 변용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얻은 유명세를 기반으로 미국으로 진출하여 제작한 이 영화가 과거 안토니오니가 도달한 영화미학에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이 이어졌을 때,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을 음미해볼 만하다. '그는 불확실성을 추구하고 의혹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정치가가 아니고 예술가이다.'
월간미술 (2011, S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