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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2018 (인디포워드 2) '박병래의 놀이와 기억' 씨네토크 스케치

인디포워드2 , <고무줄놀이>, <화포이경> 씨네토크 (2018. 06.14)

놀이는 직접적인 생존과 관련된 활동 및 일과 구별되는 것으로, 그 자체로서 만족을 추구하는 자발적이고 무목적적인 활 동이다. 그런데 박병래 작가의 등에서 놀이는 싸우고 점령하는 사회의 형식을 반복하는 한편, 이때 기억 속의 놀이는 분리 분열된 자아를 인지하고 관찰하는 기회가 된다. 그의 영상은 자각 없이 무수히 전장에 설 수 있었던 유년의 체제를 무대화하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놀이란 자발적인 활동과 권력 관계에 입각한 태도 사이의 결합 및 긴장을 몸에 각인시키는 행위였음을 성찰하게 한다.
박병래의 작품들은 주로 낯선 공간에 도착한 이방인의 탐험기다. 기억을 매개로 한 여행에서 만나는 공간은 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 과거의 미래 등 시간이 중첩된 곳이다. 놀이의 수행과 놀이의 성찰, 그리고 과거를 보면서 미지의 영역과 만나는 일 등. 그의 영상에서 이방인은 이러한 종류의 중첩을 탐색하거나 기록하는 자이다.
낯선 것들의 침입으로서 기억을 다루는 박병래의 영상에서 과거는 그 논리와 형식만으로 재구성되는데, 이때 추상화된 기억의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놀이 체제가 되어 고유의 규칙과 리듬을 탄다. 그래서 그의 영상에서 이미지의 진행 자체가 중요해진다. 놀이란 어떤 것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제 안에서 스스로 의미화하는 것이기에 놀이는 계속되는 과정 자체에서 존재가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포워드 프로그램 노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모더레이터: 우선 감독이라는 지칭을 조금 낯설어 하실 것 같아요. 보통 미술 관련된 작업을 하시기 때문에 평상시 ‘작가 님’이라고 많이 들어오셨을 테니까요. 그리고 상영하는 방식도 오랫동안 작업하신 작품을 쭉 상영관에서 보시는 경우가 많지 않으셨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일단 상영관에서 ‘감독님’이라는 이름을 다는 일이 익숙하신지요?

박병래 감독: 말씀하신 것처럼 저에게 감독이라는 명칭은 조금 익숙하지 않은데, 이렇게 국내 영화제와 인연이 닿아서 한 작품, 한 작품 상영이 되면서 감독이라고 불러지기도 했다가 작가라고 불러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10년도 넘은 작품까지 한꺼번에 다 보기는 저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머리 아프네요.(웃음)

모더레이터: 자기 작품에 대한 감상을 여쭤보는 건 실례일 수도 있지만 새로우실 것 같아요. 갤러리에서 봤을 때랑 다른 느낌이신 가요?

박병래 감독: 아무래도 갤러리에서 작품을 상영할 때 공간의 조건이 지금처럼 스크린 대 좌석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서성 거리며 볼 수 있도록 충분히 확보된 자유로운 공간이다 보니까 약간 반강제적인 느낌은 들어요. 갤러리는 좀 쉬었다가 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모더레이터: 그럼 작품을 하실 때, 보통 상상하시는 상영 방식이 상영관일 것 같지는 않은데요. 이렇게 상영해서 보시는게 의도하셨던 부분을 작품 감상에 어긋나게 하는 건 없었는지요?

박병래 감독: 스크린 하나로 작품을 보기 때문에 의도와 어긋난다고 말하기는 그렇고, 첫 순서인 이나 두 번째 상영된 고무줄놀이 같은 경우 극장이든 전시장이든 독립된 검은 공간에서 상영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세 번째 같은 경우는 이제 지금은 형태가 바뀌었지만, 과거에 보안여관이라는 얼기설기 오래 된 여관에서 동시에 상영됐던 작품인데, 총 세 편의 시리즈가 있고 그중 한 에피소드만 보신 거고요. 이러한 작품의 경우, 공간적인 요소가 상당히 중요하고 같이 작용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보여드린 <화포이경>은 어디서 꼭 상영해야 겠다는 목적보다는 프로젝트 자체가 노이즈 퍼포먼스 하시는 분과 저와 그것을 기획하는 사람 등 세 명의 구성요소가 즉흥적으로 만나서 현장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록해보자고 해서 찍은 것입니다.

모더레이터: 제가 느끼기에 작품들이 다 진행 과정이 중요하고 서사도 구성이 다양한데, 갤러리는 오가면서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접속하는게 쉽잖아요. 각 부분 별로 충격효과를 느끼기에도 훨씬 더 용이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보기에는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아야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것 같아서요. 잠깐 보고 지나가는 관객들을 고려하고 만드셨나요?

박병래 감독: 아마 어떤 작가도 관객이 어느 한 부분만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지는 않을것 같아요. 누구나 작품이 너무 재밌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볼 수 있도록 만들겠죠.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작품들 사이에 여러 개의 작품들이 또 있었는데, 그런 영상들은 그야말로 전시장 공간에만 적합한 형태의, 인스톨레이션의 성격들이 더 강한 작품들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극장이라는 상영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모더레이터: 요새 퍼포먼스라든지 미술쪽 관심을 통해서 경유해서 영화관을 오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아, 이건 갤러리에서 봐야 느낌이 더 살겠다’ 하는 작품들이 있는 반면, 작가님 작품은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자체로 매력이 느껴져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더군다나 한꺼번에 쭉 이어서 봤잖아요. 작품의 제작 기간을 보면 꽤 옛날 작품도 지금 소개가 됐는데, 작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테마가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독립적으로 하나하나 생각하신 작품들인지요?

박병래 감독: 네, 긴 시간이죠. 계속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이야기들은 뒤를 이어서 같은 관심사와 그 관심사가 나이를 먹는 만큼 변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작업을 제작 중에 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이렇게 예전 작업을 쭉 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이렇게 보니까 ‘새로운 작업에 이런 부분을 조금 더 고려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네요.

모더레이터: 공통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 또는 질문 포함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이어가고 싶기도 한데요, 그전에 혹시 질문 있으신 가요?

관객: 작품을 보면 노이즈 사운드가 많이 사용되는데요, 말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대화나 대사 혹은 텍스트 같은 것을 최대한 배제하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혹시 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이 되었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병래 감독: 질문하신 것처럼 제 작품에는 대사가 들어있는 작품이 거의 없어요, 초반 한두 작품이나 인터뷰를 했던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런 텍스트나 대화 같은 것들이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 이미지나 사건 형식으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저의 유년기에 즐겼던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놀이들? 아니면 과거 유년기의 사건이나 기억들, 그런 것들이 텍스트보다 희미하지만 아주 강렬한 이미지, 장면으로 남아있어요. 명확한 텍스트가 타인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때 굉장히 좋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 자리에서 시각적 이미지들을 읽어나가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하나의 뭉뚱그려진 모호한 이미지로만 기억을 남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더레이터: 초반 두 작품의 경우와 지금 말씀해주신 관심사에 소재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은데요, 혹시 유년 시절의 놀이가 왜 내게 이게 강렬한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시며 해소되셨나요?

박병래 감독: 사실은 왜 유년기이고 놀이일까 이런 질문을 저도 몇 해 전까지 거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고 뭔가 답을 내려보려고 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지금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라는 개인에게 있어서 그만큼 매력적인 시기였을 수 있고 아님 동경의 시간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도피처 같은 곳일 수 있겠죠. 그 자연스러움에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질문을 한다는 건 제가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들이 더 경직되고 자꾸 군더더기가 붙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은 질문하지 않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앞선 두 개의 작품이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시작점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좀 명확한 편이고 세 번째는 그것과 연계해서, 한 지역에서 레지던시하면서 저 혼자 끊임 없이 도시 자체가 변화하는 과정을 바라본 시각으로 저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풍경들을 찾아 나섰던 생각들이고요.

모더레이터: 제 개인적으로 세 번째 작품 같은 경우는 지역으로의 분산일 것이고 <화포이경>도 더 바깥으로 향해 있는 느낌이 들어요. 두 작품은 내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경로들, 과정들을 지금 시점에서 ‘놀이’를 들여와서 한 번 추적해 보자는 느낌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고무줄 놀이의 경우, 나와 내가 관계하는 문제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면, 첫 번째에 더 구체적으로 천착해 있는 것은 앞선 방공 애니메이션이라든가 보면 그냥 놀고 균형을 맞추고 보내는 시간과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회적인 관심사랄까, 담론이랄까 이런 병합들이 저는 느껴졌었는데 앞선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이 제가 생 각하기에는 어느세대의 밑으로 내려가면 그게 뭔지 모를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것 역시도 설명없이 던진것은 세대가 공감하는 영역이고 작품이라는 의도가 있었는지? 좀 더 친절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병래 감독: 좀 친절해질 필요는 있는 것 같은데, 내일은 세계의 회담이 열린다는데 그땐 이렇게 우리나라가 바뀔지 몰랐죠(웃음). 글쎄요, 음 옛날 작품은 아무래도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웃음). 저는 DV 시절에 제작했던 것인데요, 세 개를 구분을 짓는 것들이 저희 한국 사회가 갖는 특징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어떤 단순히 이데올로기가 있었고 당시에는 이런 선전용 미디어들이 너무 익숙하게 어린 아이들에게 보였구나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나중에 자라서 생각해보니까 너무나 많은 부분에 제가 양쪽으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단단하게 서서 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한쪽은 약간 불균형으로 자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 관심 있어서 만들었고 굳이 막 그런 쪽으로 막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가능하면 딱 보면 알 것 같은데도 좀 숨기고 덮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모더레이터: 한국 사회의 세대의 경험이라는게 정말 놀라운 것 같아요. 제 친구의 남자친구가 소방차를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거든요. 저는 아마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게 방공호구나’라는 걸 아는 마지막 세대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놀이가 즐거움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싸움이 땅따먹기 아니면 어디를 점령하라는 뉘앙스가 섞여 있는 것, 누군가 퇴장당한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그러다 또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구성을 하실 때 즉흥적으로 다시 놀이를 하신 건지, 아니면 다 구체적으로 짜신 건지요?

박병래 감독: 원래 대부분 큰 스토리만 구성하고 큰 키워드가 될 이미지만 설정한 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하는데 지금 말씀하셨던 놀이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마이크로 가려져 있는데 전부 외국인 친구들이라서 이 놀이를 잘 몰라요. 그리고 너무 어린 친구들이기도 하고요. 즉흥적으로 할 수는 없었고, 전부 그려서 이런 룰이고 형식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것도 잘 안돼서 결국 한 시간씩 포즈를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모더레이터: 와, 포즈를 한 시간씩이요. 그럼 위치 지정도 다 하셨다는 건가요?

박병래 감독: 네, 결국 그렇게 해서 넘어진다거나... 보시면 한 친구는 운동 신경이 없어서 원하는 의도로 날아가게 하기 위해서 나중에는 각도도 틀었습니다.

모더레이터: 제가 이걸 여쭤본 건 작품을 보면 우연적인 것 같다가도 거의 조형미 비슷한 느낌이 들도록 느껴지는 구도가 있어서 궁금했거든요. 그럼 전부 치밀한 준비 하에 배치를 하신 건데요, 작품은 10분이 좀 안되잖아요. 혹시 전체 작업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셨나요? 꽤 오래 걸리셨을 것 같아요.

박병래 감독: 스태프를 모아서 현장에서 찍는건 3-4일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촬영 시간으로 따지면 꽤 많은 시간의 테이프를 사용했죠.

모더레이터: 편집도 다 직접 하시나요?

박병래 감독: 네.

모더레이터: 그럼 편집도 우연적 요소가 거의 없이 계획하셨던 대로 바로 된 건가요?

박병래 감독: 그렇지는 않고 편집하면 30%는 조금 보완되는 것 같아요. 뭔가 의도하고 찍지만 그런 씬들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꽤 많이 발생합니다. 그로 인해 장면들을 보다가 ‘이야기를 이러한 형식으로 표현하는게 더 좋을 거다’라는 판단이 서면 (편집을 통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더레이터: 한 편의 놀이로도 반성하고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두 작품을 한꺼번에 몰아 보면서 저도 토끼놀이는 모르고 다방구 비슷한 형태는 아는데 고무줄 같은 경우 명백히 생각나는 노래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처럼요, 그런 놀이를 참 해맑게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지금 다시 그 강렬했던 놀이를 복원하는 과정이 어떤 불균형하게 자란 부분들을 스스로 작품 속에서 해소하거나 성찰해서 의식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셨나요?

박병래 감독: 글쎄요,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웃음). 도움이 됐으면 지금 좋은 사람이 되었겠죠. 그렇게 사회성이 썩 좋아 보이지도 않고...네, 그렇습니다(웃음). 지금 같은 경우 저런 과거의 기억들이나 놀이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들에 적절한 형태로 개입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묻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왔었습니다. 지금 작업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점차 그런 불균형한 것에 대한 의문이나 해결점보다는 그 시절에 스치면서 봐왔던 풍경 (풍경이라고 통칭하고픈 것들이 있어요)을 풍경을 조금 무감하게 지나쳐 볼 수 있게끔 구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존의 놀이뿐만 아니라 노래를 만들어 볼 생각이고 우리 세대들이 과거를 보면서 ‘그랬구나’ 할 수 있는 형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더레이터: 그럼 고무줄놀이에서 ‘나랑 달라지는 거울 너머의 나’가 지금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정서라고 볼 수 있을까 요?

박병래 감독: 네, 사실 2008년인가 그쯤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내가 동일시하려고 하고 확인하려고 하고 찾으려고 하는 나의 저 바닥에 있는 이미지가 절대로 같을 수도 없고, 같다고 한들 그게 지금의 나하고 무관한 이미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의 공존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더레이터: 작품이 어떤 면으로는 확 보이는 시선과 테마가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조금 비켜난 관심사들이 보이는게 재미있었습니다. 두 작품들이 나의 어떤 다른 차원과 계속 대면 혹은 대결하거나 어긋나는 이러한 것들이 보입니다. 게다가 고무줄놀이는 무의식과의 어떤 관계 같다는 느낌도 주고요. 심리를 ‘나의 심리’라고 확 드러나게 하고 거기 안으로 깊게 들어가려는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정체성이라고 외치는 것과는 다르게 풍경처럼 내버려 두려고 하시는게 재미있었어요. ‘나를 발견할 거야!’ 이런 느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옅어지고 지워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쭙고 싶은게, 다 가면을 쓰고 익명적으로 보는 것들이 혹시 ‘내 이야기다, 나의 내면이야!’하는 것들에서 좀 벗어나고자 한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요?

박병래 감독: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개인화되는 이야기로 함몰되는 건 원치 않았어요. 모든 작품들이 너무 일방적인건 피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사실 제가 아무래도 미술시장에서 활동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그런 경향을 띨 수 있는데, 극장을 베이스로 하는 작가라면 그렇게까지 작품이 안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모더레이터: 그럼 혹시 해외에 작품을 소개하신 적이 있나요?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박병래 감독: 2010년까지는 작품이 완성되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상영하고 피드백 받고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굉장히 기간을 띄엄띄엄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전시도 1년에 횟수를 아주 줄이고 있습니다.

모더레이터: 근데 저는 애니메이션을 봤을 때, 고무줄놀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연결점이 존재하는데 외국인은 그런 것이 없을 거잖아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외국 관람객분들이 감상하셨을지요?

박병래 감독: 그런 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 같아요. 시대적인 정서보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놀이를 통해 뭔가 대결하거나, 찾고자 하거나, 분리하거나 그런 정서는 비슷하게 느끼는것 같아요. 다만 시대적인 정서는 거기에서 제거했는데, 그 이유는 제 세대가 가진 한국 사회 특정된 지점이 작품 전면에 드러난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자유롭게 해석 될 수 있는 부분들을 가린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모더레이터: 컨셉트를 가지고 추상화시켜서 다루고 계시지만, 그걸 호흡하는데 있어서 신체리듬이 많은 역할을 할 것 같 습니다. 굉장히 공들이고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한 퍼포먼스에 방점을 많이 찍고 계시잖아요, 게다가 직접 하고 계시고요. 그 신체의 움직임의 미상이랄까, 그런 것을 어떻게 작업하고 계신지요?

박병래 감독: 일단 놀이가 소재이니까 몸의 행위 자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놀았던 놀이를 직접 기억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 신체만큼 적합한 신체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자꾸 배가 나오는 바람에 어려웠는데요, 지금은 (배가 들어가서) 많이 공을 안 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조금 더 잘할 것 같습니다(웃음).

모더레이터: 앞으로도 계속 연기자로 무대에 서실 계획이신 가요?

박병래 감독: 그건 자제할 생각입니다. 극도로 작은 부분만 사용하려고요.

모더레이터: 이유는 배가 나와서인가요(웃음)?

박병래 감독: 지금은 많이 사라졌는데, 음... 별 이유는 없습니다(웃음).

모더레이터: 내가 겪었던 놀이의 경험에 들어가는 것에서 신기한 건 낯선 것으로 가는 거고, 이 낯선 곳이 세 번째, 네 번 째 공간으로 바로 연결이 되었다는 겁니다. 내가 도달한 곳에서 하는 놀이에 관해 얘기하셨는데요, 다른 방향으로 진행 하고 있는 외국인이잖아요. 왜 외국인을 캐스팅하셨나요?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면 익숙한 내 얼굴이 있다가 딴 방향으 로 들어갔을 때 낯선 얼굴이 나로 등장하는 것도 의미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병래 감독: 그런 형식으로 구성하는 이유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놀이를 소재로 해서, 저에게도 일종의 과거로 가는 여행이었는데, 그 여행의 계기가 된 상황이 아주 작은 상황의 연결지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연결 지점이 꼭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곳이고, 그런 상황을 통해 나도 연결이 분리되는 상황.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보이길 바랐습니다. 잘 표현되었는지 모르겠지만요.

모더레이터: 그런 낯선 조합들이 서로 다르게 달려가는 것들은 잘 느낄 수 있어서 재밌게 봤습니다. 작품들에서 공간을 나누어서 탐험하듯 놀이를 옮겨가시는 것이 연속적으로 감상하는 데에 흥미를 주는 요소입니다. 과거에 경험 속에서 발견하는 것도 있지만 나와 지금 맞닥뜨리는 풍경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고 하는 게 굉장히 새로운 마음이 들게 했거든요. 제가 군산에 갔을 때 느꼈던 정서, 군산은 실패한 도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관광하기 좋은 예쁜 동네로 알려져 있고, 근데 또 한 발만 벗어나면 너무 정신 없는 도시로 변해있는거죠. 저는 그 세 번째 작품에 접속하기 손쉬웠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작품의 기획이 어떻게 되시는지?

박병래 감독: 잘 모르는 도시였는데요, 거기에 레지던시가 하나 생긴다고 해서 내려가서 머물 때, 그곳의 개발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인 시점에 예술가들의 레지던시가 진행됐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과거의 디스코텍이나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 고스란히 버려져서 방치된 풍경이 레이어만 쌓인 채 방치돼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이제 박물관으로 바뀌고 예쁘게 포장되었는데 그 마지막 풍경을 담으며 탐사를 하는 과정으로 기획을 했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저도 그전까지는 우리 세대가 내 개인적인 불균형한 정서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사회 전반적으로 풍경화가 됐는지를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과거에 큰 영광을 안고 있던 군산이라는 도시가 60년대에서 70년대, 80년대를 거치면서 개발의 중심점에서 벗어나고 어떻게 황폐화되어 갔고 어떤 식으로 방치되어갔는지가 보이면서 또다시 복원하는 시점에서 기준 없이 흔들리는 상황들이 제게 와닿았습니다. 다시 내 세대가 사회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혼란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더레이터: 안중근 의사 기념 공간이 있어서 안중근 의사와 군산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아봤더니 연관이 없더라고요 (웃음). 군산이 개항을 했고 일본 문화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 시기에 중요한 인물이 안중근 의사이기 때문에 그 감옥을 복원해낸 거에요. 너무 이상한 콘셉트과 역사적인 증거를 둔 것인데 그건 관광상품인 것이죠. 세 번째 작품이 이러한 그 때의 생각이 살아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원래 3채널로 구성되면서 더욱 혼란을 겪도록 하는 작품으로 알고 있 습니다. 그중 베이스캠프 파트를 본 건데, 베이스캠프가 필요했던 이유는 뭘까요?

박병래 감독: 제가 저 작품 만들고 나서 전시할 장소를 찾는데 대부분 정형화된 화이트 큐브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공간 을 찾다가 보안여관이란 공간을 봤는데 그곳은 기둥들과 약간 부서진 흙벽에 골조들만 남아있는 아주 오래된 여관이었어요. 2층 같은 경우, 공간들이 건너서 다 볼 수 있었고요. 1층은 흙벽으로 되어있는 과거의 여관 방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시다발적으로 2층 전체를 스크린으로 영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층 여관방에는 당시에 그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의 인터뷰도 있었고 또 접점의 이미지, 우주적인 이미지로 몰입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레시던시 당시에 작품을 하지는 못했어요. 군산 당시 풍경들, 미국일지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집창촌 풍경들을 가지고 고민만 하다가 1년 후 이 작업을 다시 하게 됐죠.

모더레이터: 상영관은 스크린을 여러개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공간 형태잖아요. 혹시 세 개가 다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스크린 내에서 분할을 하는 식으로 작업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단 생각이 없었는지요?

박병래 감독: ...노력해보겠습니다(웃음).

모더레이터: 아니, 아쉬워서요(웃음).

박병래 감독: 저도 그런 컨디션으로 전시한 건 그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요, 사실 그런 작품 많이 있습니다. 익스트림하고 와이드한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들은 딱 거기만 상영하고 어디에서도 상영할 수 없었던 작품들이요. 작은 채널로 동시에 한꺼번에 보는 것도 했었는데 그 공간이 적합하지 않아서 잘 전달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그런 고민들이 점점 더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상영관은 다른 종류의, 다각도의 경험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갤러리 역시 영화들을 갤러리 안으로 가져간다는 게 어떤 걸까 등의 고민들이 많이 필요하고 시도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화포이경> 같은 경우, 어떻게 보면 영상에 최적화된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무 저항감이 없이 이례적으로 영상 안에서는 유일하게 그 놀이가 보였는데 어떻게 성립이 됐나요?

박병래 감독: 그 공간을 운영하시는 분들께서 몇 해 전부터 사운드 퍼포먼스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셔서 퍼포먼스 하시는 분들과 쭉 해오셨습니다. <노이즈 가든>처럼 향교에서 즉흥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자연에서 순수한 소리들을 일그러뜨리고, 조작시켜서 증폭시키거나 없애버리는 퍼포먼스를 작업해왔어요. 이걸 기록하려는 과정에서 일반적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를 찾으셨는데 마침 프로젝트 일정이 저와 맞고 서로 이야기도 통해서 함께 진행하게 됐습니다. 저도 현장성 이 강하고 즉흥적인 데에 거부감이 없어서 했습니다. 물이 빠졌다가 들어오는 그 시간을 한 2-3시간 정도 쭉 봐오면서 날짜를 정해야 했는데, 그 일정을 담은 달력이 따로 있더라고요, 그 달력을 쭉 추적하시는 분들이 그중 가능한 날짜를 정해서 저와 사운드 퍼포머와 시간을 맞춰서 순천만에서 라이브로 3시간 정도 촬영했습니다. 그날 처음 만났고 촬영하고 그날 안녕하고 돌아왔죠.

모더레이터: 그럼 그 뒤로 편집하고 완성하는건 고스란히 작가님께서 하셨나요?

박병래 감독: 네, 다 완성하고 그분들은 보고 만족했던 것 같아요. 결론은 되게 슬픈 영화라고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혹시 어느 부분에서 슬프셨던 건가요? 놀이가 끝나서요?

박병래 감독: 아뇨, 놀이를 한 번에 성공한 적 없고 계속 실패해서 찍으면서 ‘은행원은 어쩔 수 없구나’ 했었죠.

모더레이터: 아, 그분 원래 직업이 은행원이었나요?

박병래 감독: 네.

모더레이터: 아하. 물은 계속 오고 있는데 실패하고(웃음) 안타까웠어요. 저는 처음에 소리를 채취하는 목적을 팔로우하 는 영상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니까 퍼포먼스 전체가 기록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이크를 계속 대고 소리를 녹음 하잖아요, 안 쓰는 소리 없이. 채취 목적 자체는 없었던 거죠?

박병래 감독: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사실 그 친구에게 저는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소리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 었거든요.

모더레이터: 어렵네요. 움직이는 모든 소리를 거기에서 하나로 뭉친다는 건 알 수 있는데요. 바람 소리는 거기서 어느 정 도로 느끼신 건가요?

박병래 감독: 바람 소리도 그곳이 만이라 그런지 엄청났던 것 같아요. 사실 바람소리가 주요가 아니었는데도요. 소리를 없애는 작업도 제 생각에는 의도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 않아요. 그 친구의 여정을 쫓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기록은 하되, 총 3대의 카메라로 기록하는데 서로 개입하지 않아야 할 영역 정도만 작업하고 쭉 기록하면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괜히 터널 들어가고 싶어 해서 들어갔다가 나오고, 또 여기에서 저기로 갔다가 주변에 있는 것을 끌어들이고. 다 끝나니 엄청난 분량이었는데 그걸 이야기로 만든 거죠.

모더레이터: 그렇다면 앞선 작품들에서, 아주 다르게 즉흥적으로 만드신 것인데 그렇게 카메라로 하는게 낯설지는 않으셨어요?

박병래 감독: 네, 그동안은 촬영을 안 하고 ‘제가 이렇게 해줘’라고 말하는 입장이었다가 촬영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촬영과 편집을 하면서 변수가 많았었고 그 변수가 제 작품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는 걸 많이 경험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근데 그 친구나 제가 의도했던것이 전달하는데 있어서 잘 맞아떨어지는진 모르겠지만, 각자 퍼포머는 퍼포먼스 하는 과정이 끝나는 순간 그 작업이 끝난것이고 기록하는 사람은 기록해서 가져가는것이 그 역할이 끝난것이고, 거기에 나온 결과물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 없이 다 수용하는 거죠. 그야말로 다 퍼포밍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카메라 안쪽에서 퍼포먼스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소외가 있으신 가요?

박병래 감독: 그때는 엄청 더웠거든요. 저는 그런 거 못합니다(웃음).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계속 실패하고 어눌하고 어설프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인간미가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계속 소리를 없애려는 것들이 조금 짠한 감정은 있었습니 다.

모더레이터: 노이즈 사운드라는 것을 저도 잘 이해는 못하는데 목적의 소리, 정서의 소리 심지어 침묵까지 소리인 상태 에서 전하려는 시도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흔히 자신의 경험을 낯설게 하기와 같은 영역들이 있는것 같은데요, 감독님 께서 영화 안에서 보여주신 화면들이 낯선것을 통해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게 느껴졌거든요. ‘낯설게 한다’는 말들이 감독님 테마 안에 있다고 봐도 될지요?

박병래 감독: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작품을 쭉 보시면서 그런 감성이 느껴졌다면, 제 손을 떠난 작품이라(웃음) 감상평은 충분히 자유롭게 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모더레이터: 또 하나는 <화포이경>에서 조합을 이루어낸 놀이가 퍼포먼스하면서, 테마와 자기 생각과 행위,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가 있고 계속 중첩되는 놀이를 이루면서 다 만났다고 하셨는데요. 만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으로는 어린 시절에 겪으셨던 불균형한 놀이를 새롭게 다시 쓰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낯설게 하기를 여쭤봤습니다. 노이즈 사운드 하는 부분이 갇혀있고 여는 방식으로 소리를 쓴다면, 감독님의 놀이도 놀이로 실제로 줄 수 있는 것들을 여는 단계까지 조합이 일어난 게 아닐까. 그야말로 이 놀이는 콜라보잖아요. 그래서 여럿이 같이 놀고 있는 첫 작품과 겹치면서 굉장히 재밌었고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다음 놀이가 또 있으실지요? 있다면 어떤 장면일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박병래 감독: 말씀하신 것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의 친구들과 콜라보하며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몇 년 쉬면서 새로운 작업을 구성하고 엎고 그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있던 작업들은 10여 년 전의 놀이를 했던 공간이 주요 소재이지만 뭔가 저의 행위나 어떤 액팅이 베이스가 된다기보다 사건과 그것을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들, 더 많은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얽히게끔 구성하고 있어요.

모더레이터: 그럼 혹시 갤러리나 영화관 구분 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접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올까요?

박병래 감독: 네, 개별적 에피소드를 역시나 하나의 스크린에 완성도 있게 하려고 구성 중입니다. 작품을 전시할 때는 여러개의 채널이 있기 때문에 그 맥락 연결할 수 있는 다른 인스톨레이션이나 작은 소형 채널도 같이 포함될 거고요.

모더레이터: 조만간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님 작품 볼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_데일리팀 김혜림
사진_영상기록팀 원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