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래 개인전 - 블루 하이웨이 / 아터테인 / 2024.10.18-11.12
"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들 : 그만큼 연약하고 불안정하지만 가장 큰 행복감을 주는 것들."
- 팬데믹이 조금 진정되어 가던 2022년 2월, 국내 뉴스에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유럽의 동쪽으로 군인들이 이동하는 사진 이미지들이 국제 뉴스에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유럽의 한 지역에서 국지전이 발생했고 곧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에 따른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들은 지리적 거리감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했고 나는 수개월간 전쟁의 빠른 종식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SNS에 일상과 회복의 이미지를 주기적으로 업로드했다.
-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신문기사를 통해 새벽에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행렬 사진을 보았다. 전쟁을 피해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른 모습이었다. '저들은 언제쯤 다시 식탁에 둘러앉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사진을 마주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일상의 상실은 나로서는 쉬이 상상이 되질 않는다. 그날 새벽처럼 그 끝이 보이지 않던 자동차 행렬이 아주 오래전 언젠가도 있었다. 1963년 여름, 미국의 한 시골 농가에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3일 동안 노래를 불렀다. 사랑, 자유, 평화와 공존을 노래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좁은 어깨를 내어주고 기대었다. 그날도 도로는 어딘가로 향하는 차량들의 행렬로 가득했다.
- 에릭 로메르(Éric Rohmer)의 영화에는 식탁에서의 대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지나칠 만큼 일상적인 대화와 평범한 구도의 롱테이크로 인해 그 장면들은 영화 속 시간과 공간임을 인지함에도 그 경계가 모호해져 과거 내 기억 속 어디쯤으로 인식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식탁을 아우르던 빛 한 조각, 바람소리 한 조각, 음식과 사람들, 그 작은 한 조각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다시 돌아오길 마음속으로 바랄 때가 있다. 아마도 내 주변의 풍경이 이전과 다르게 변화됨을 감지할 만큼의 나이를 먹어서인지 가끔 이런 부질없는 상상에 휩싸이곤 한다.
- 작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과거 TV, 신문, 잡지, 영화 등으로부터 차용된다. 현실 속의 미디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그 과잉된 양과 속도에 의해 접촉과 동시에 증발해 버린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미지들 중 극소수의 것들이 나에게 어떠한 흠집, 예술적 접근이 가능한 일종의 틈을 제공하고 작업의 동기부여를 주게 된다. 그 예술적 유희의 과정에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환기와 호출 즉 기억 속 미디어로의 접속이다.
- 과거의 미디어로부터 소환된 이미지들은 내게는 기억을 함유한 서사로 어떠한 사물의 형태에 가깝다. 물론 그것은 기억이기에 불안정함을 내재한다. 하지만 그 과거의 개인적인 서사에 현재성을 부여함으로 특별한 재현물로 되살아난다. 오늘을 결정지은 과거의 역사적 지점들은 나에게 중요한 순간으로 인식되고 그 순간들을 현재와 연결하며 서로 다른 시간의 미디어를 오가며 접속하고 호출하는 방식을 예술 언어로 삼고 있다.
- 어릴 적 하굣길에서 만나는 논에는 봄이면 물이 가득 차고 갖가지 곤충들이 스쳐가며 물파장을 만들어냈다.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갖가지 크기의 물파장을 쫓아 보고 있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구상하며 나는 생성과 소멸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물파장의 모양새처럼 그날의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의 행렬이미지들로부터 다음 이미지들을 끌고 왔다 사라지고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하였고 내 기억 속의 어느 지점, 역사적인 의미였을 그 이미지들을 현재와 마주 놓으며 은유적이고 비밀스러운 그들 간의 순환하는 공명에 집중하였다.
- 우리 공동체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그 여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만약 있다면 마땅히 회복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불안과 공존하는 망각에 의존한 일상과 그것이 빚어낸 불면의 밤, 위태로운 우리 사회를 외면하고 말을 삼킨 자의 모습에서 여전히 우리 공동체가 믿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회복할 수 있을까? 그 지점은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들, 연약하고 아름다운 그것들을 구원하는 것일 것이다. 집 거실 선반에는 1982년 어느 봄에 촬영한 퉁퉁한 얼굴살이 가득한 붉은 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국민학생 남자아이가 차렷 자세로 서있다. 아침이면 나는 그 아이를 보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한다. '오늘도 안녕하니?'
2024년 박병래